Movie2007. 12. 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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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본인이 2003년 9월 19일 "미디어 타임라이프"의 영화해부학 칼럼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남자는 평생동안 눈물을 세번 흘린다고 한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 무슨 구태의연한 말이냐만은, 어찌됐건 남자는 그만큼 눈물을 쉽게 흘릴 수 없는 사회적인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주먹 하나로 일생의 반을 살아왔고, 남은 반의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게 쉬운 줄로만 알았다.
그저 때릴 수 있는 자는 때리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자신이 맞는 삶을 그는 살아왔다. 그는 그렇게 무의미한 나날을 오늘도 살고 있다.

한 여자가 있다.
여자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한국이란 나라에 살고 있는 멀고 먼 친척을 만나 일자리도 찾고,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찾아갈 사람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마지 못해 위장결혼을 하게 되는 처지가 된다.
이것이 그녀의 현실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두 남녀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위장 결혼을 하게 된다.
그저 서류 상의 결혼이기 때문에 증명사진 한장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서로에 대한 기회의 전부다.
그런 그들이 사랑을 한다....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정말이지 가슴 저미는 카피 문구는 이 영화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파이란"은 일본영화 '철도원'의 원작 동명 소설 '철도원'의 '러브레터'라는 에피소드를 영화화한 것이다. 파이란은 송승헌, 김희선 주연의 카라를 연출했던 송해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두 영화 모두 흥행면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전작 카라에 비해 파이란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많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건달이라기 보다는 양아치라는 직위(?)가 더 어울릴 듯한 강재(최민식 역)는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가 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하게 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 몸 담고 있는 조직의 보스가 살인을 하게되어 잡혀갈 위기에 처하자 강제에게 대신 자수하면 큰 보상을 하겠다는 제안을 하게되고 강재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의미에 대한 되짚어보게 된다.

그러던 차에 강재에게 편지 한통이 도착한다.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부인....? 아내... 결혼....
그제서야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강재는 내키지 않지만 일말의 의무감으로 파이란(장백지 역)이 살던 곳을 찾아간다. 기차 안에서 전해 받은 파이란의 편지. 그는 편지를 한장 한장 읽어내려 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초등학생처럼 서투른 글씨지만 정성이 담긴 그 편지에는 결혼해줘서 고맙고, 보고싶다는 수줍은 파이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녀의 방과 일터, 자주 찾던 해변가를 찾아다니며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된 강재는 그녀의 편지를 손에 꼭 쥐고 오열한다.

강재의 눈물.

그의 눈물은 살고자 했지만 모진 세상 탓에 살지 못했던 파이란을 위한 눈물이자 자신의 의미 없었던 지난 나날들에 대한 속죄의 눈물이었으리라.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하고, 아끼고,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강재의 삶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오락실에서 하루를 때우고, 양아치처럼 어린 아이들을 괴롭히는 그 무의미한 삶은 우리의 다람쥐 챗바퀴 돌 듯 맴도는 일상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떻지 돌아본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재의 뜨거운 눈물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최소한 자신을 놓아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에게 매여있는 삶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눈물의 무게만큼 힘 주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참고 : 파이란은 국내 인터넷 카페(다음) 최초로 단일영화에 대한 팬클럽이 생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Posted by 일보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