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2007. 10. 19. 07:39
국내배우들의 해외진출 소식이 종종 들려오는 가운데, 헐리웃에 입성하여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배우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중훈은 '찰리의 진실(The Truth About Charlie)'에 출연하여 국내 최초 헐리웃 진출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비(정지훈)의 경우는 '매트릭스'의 감독으로 유명한 워쇼스키 남매의 새작품인 '스피드 레이서(Speed Racer)'에서 비중있는 조연을 맡아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정준호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작이기도 한 '웨스트 32번가(West 32nd)'에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장동건은 판타지 영화 사막전사(Laundry Warrior)에 캐스팅되어 장쯔이와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장혁은 '댄스 오브 드래곤(Dance of Dragon)'에서 댄서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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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전지현'의 헐리웃 진출작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Blood : The Last Vampire)'의 스틸컷이 영화 블로그에 공개돼 눈길을 끈다. 일본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헐리웃에서 제작되는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Blood : The Last Vampire)'는 자신이 뱀파이어이면서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사야'라는 소녀를 소재로 한 영화다. 원작에서의 '사야'는 인간을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동족인 뱀파이어를 사냥해야하는 상황에서 신을 부정하고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영화나 CF 등의 활동을 통해 줄곧 '청순', '발랄', '섹시' 등의 고정된 이미지로 팬들에게 각인되어 왔기 때문인지 뱀파이어 역할의 전지현을 상상할 수 없다는 여론이 부각되면서 전지현의 헐리웃 성공적인 진출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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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지로서의 전지현'이 아닌 '배우로서의 전지현'으로 그녀를 바라보면 결코 단일화된 이미지의 배역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엽기적인 그녀' 한 작품만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 그녀 스스로 '엽기적인 그녀'가 넘어야할 산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의 미진한 흥행성적표가 그늘에 가리워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화이트 발렌타인', '시월애', '4인용 식탁',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데이지' 등 많지 않은 필모그래피이지만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제외하면 '엽기적인 그녀'의 이미지와 중복되는 이미지의 배역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다양한 스펙트럼의 배역에 과감히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결국 그녀의 고정된 이미지는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CF에서의 전지현도 마찬가지다. 신비주의 전략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외에 딱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를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는 루트가 바로 CF(광고)이다. 전지현은 청순함과 섹시함을 두루 갖춘 특유의 매력을 CF를 통해서 한껏 발산하여 이미 초특급 CF 스타로 입지를 굳힌 상태다. CF에서도 역시 정형화된 이미지가 그녀를 가둔 셈인데, 이를 되짚어보면 소비자가 전지현의 그러한 모습을 원하고 이를 포착한 광고주가 전지현의 특정 이미지를 요구하여 CF가 만들어짐을 유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지현의 고정화된 이미지는 그녀 스스로가 아닌 팬들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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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스스로가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간에 그녀의 이미지가 특정 테두리 안에서 고정화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Blood : The Last Vampire)(이하 '블러드..)'는 오히려 그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블러드..'가 국내에서 제작된 국내용 영화였다면 180도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팬들이 당황하여 흥행에 실패. 그녀의 연기를 평가할 겨를도 없이 변신 전의 이미지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더욱 현실적으로 보자면 충무로에서 제작된 '블러드..'는 애초에 전지현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블러드..'가 헐리웃에서 제작되는 영화이기에 의미가 있다. 아시아권에서 어느정도 알려진 스타일지라도 헐리웃과 전세계에서의 전지현은 일개 무명배우일 뿐이다. 헐리웃에서 전지현은 고정된 이미지는 커녕 오히려 순백의 도화지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더이상 그녀에게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헐리웃과 세계를 무대로 배우로써 출발점에 선 것이다. 만약 '블러드..'가 미국과 전세계를 대상으로 흥행에 성공하거나, 혹은 흥행성적이 미진하더라도 전지현의 연기력이 어느정도 인정 받는다면 국내에서의 고정화된 이미지도 자연스레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지현의 다양한 변신에 대해서 색안경을 쓰고 보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는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내 여론이 해외에 무조건적으로 종속된 것은 아니지만 전지현의 매력을 재발견하기에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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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전지현의 헐리웃 진출이 성공할 수 있을까? '블러드..'의 원작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꼽는다면 '사야'의 눈빛 연기(?)다. 평소에는 무미건조한 듯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가도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때면 눈빛에서 엄청난 적의가 드러난다. 또, 자신이 죽여야 할 '익수(翼獸 ; 날개달린 괴물)'를 앞에 둔 상태에서는 결의에 찬 눈빛을 보이다가, 끝내 자신에게 죽임을 당한 익수의 사체 앞에서는 마치 익수와 교감하는 듯한 눈빛이 나타난다. '사야'라는 캐릭터 자체가 액션을 제외하고는 '눈빛 연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사야'의 눈빛을 전지현이 완벽하게.. 아니 무난한 정도라도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나는 사실 약간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앞서 언급한 전지현의 고정화된 이미지가 나에게도 여지 없이 작용했기 때문인데, 다른 것들은 다 인정한다 손 치더라도 '소름끼칠 듯한 분노의 눈빛'은 역시 기존의 전지현의 이미지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이는 전지현 스스로가 연기력으로 대답해야할 문제이니 성급하게 미리 예단하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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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과 영어대사 처리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하다. 전지현의 영어실력은 이미 '데이지'의 유위강 감독이 "최상급의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공백기간마다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고 하니 영어가 더이상 장애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액션에 관해서는 '블러드..'의 메가폰을 잡은 우인태(于仁泰, Ronny Yu) 감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인태 감독은 1993년 임청하 주연의 '백발마녀전'을 제작/감독한 장본인으로, 헐리웃 진출 후에 '사탄의 인형 4 : 처키의 신부', '프래디 대 제이슨'을 감독하였으며,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이연걸 주연의 '무인 곽원갑'을 감독하기도 했다. 액션 영화에 관해서는 내공의 수위가 상당한 우인태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액션장면을 기대해 볼 만하다. 단지 우인태 감독이 헐리웃 진출 이후에 딱히 내세울만한 흥행작품이 없다는 점에서 약간의 우려감이 생긴다. 또한 만들어온 작품들이 대부분 B급 영화여서 인지도 역시 그리 높지 않음이 아쉽다.

그러나 '세라복을 입은 동양인 소녀가 일본도를 들고 뱀파이어와 사투를 벌인다'는 소재만 보았을 때는 헐리웃의 입맛을 충분히 자극할 만하다고 판단된다. 마치 '킬빌'과 '블레이드'를 잘 혼합해 놓은 소재이면서도 이러한 것들이 흥행을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 아니라 작품성을 인정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더욱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역시 영화의 성공 여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바라건데, 헐리웃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전지현에게 국내팬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의 목소리가 닿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에 재미있는 영화를 선사해 줄 수 있도록 혼신의 연기를 다해 줄 것과 더불어 다소 식상한 이미지에 다시 불을 붙힐만한 새로운 매력을 스스로 찾아내 국내팬들에게 보답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일보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