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vision2009. 1. 4. 20:10
무한도전 팬들이 드디어 일을 냈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파업에 동참함으로써 미쳐 완성하지 못했던 '2008 You & Me Concert'편에 대해 직접 편집을 하고, 자막을 입혀 팬버전 '2008 You & Me Concert'를 공개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26일 7대 악법을 비롯한 언론악법을 반대하는 대규모 언론노조의 파업에 MBC 노조가 참가하면서 무한도전 제작진도 '2008 You & Me Concert'의 편집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파업을 맞게 됐다. 12월 27일 무한도전 '2008 You & Me Concert'가 방영된 이후에 각종 무한도전 관련 게시판에서는 미완성된 무한도전을 보고 실망한 팬들이 파업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와 여당에 비난을 퍼붇고 무한도전 제작진의 파업을 지지하는 한편, 파업사태가 마무리되면 감독판 '2008 You & Me Concert'를 다시 제작, 방영해 달라는 요청글이 쇄도했다. (관련글 : 무한도전 You&Me 콘서트 방영후 주요게시판 반응)

각종 인터넷 게시판 중에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단연 디씨인사이드의 '무한도전 갤러리(이하 무도갤)'였다. 무한도전의 골수팬들이 상주하며 무한도전에 관한 소식을 가장 빠르게 주고 받기도 하고, 관련 컨텐츠를 생산/배포하는 것으로 익히 잘 알려진 무도갤에서는 'You & Me Concert'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의견의 글들이 셀 수 없이 쏟아졌다. 이미 'You & Me Concert'편이 방영되기 전부터 무한도전을 비롯한 언론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배너를 제작하여 배포하기 시작한 무도갤의 발빠른 행동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무한도전 제작진의 '못 푼 한'을 위해 우리가 직접 나서겠다며 일명 "자막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디씨인사이드 무도갤에서는 과거 무한도전과 관련된 대형 프로젝트를 여러번 성사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무한도전 로고가 새겨진 모자나 핸드폰 액정클리너를 주문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하고, 리플북과 리뷰북 등은 상당한 공을 들여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다. 무한도전 제작진을 위해 간식을 싸들고 촬영장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MBC 사무실로 손난로와 머그컵 등을 전달한 적도 있다. 무도갤의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가 여타 팬클럽의 활동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고정화된 지도부와 회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일개 게시판일 뿐인 무도갤에서는 글을 읽고,쓰는게 활동의 전부인 갤러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엄청난 행동력을 가지고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혼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을 이루어내곤 한다. 팬클럽처럼 회장이나 임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원들의 회비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한명 한명의 갤러들이 모여 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무도갤에서는 모자, 액정클리너, 리뷰북 등의 실물 컨텐츠를 판매할 때에는 조금의 이윤도 남김 없이 원가로 물건을 판매하여 그 의미를 희석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점에 있어서 완벽한 자정능력을 발휘한 모범적인 팬덤문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무도갤의 이러한 영향력은 결국 무한도전 제작진에게까지 닿아 김태호PD를 비롯한 제작진이 무도갤에 직접 글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엄연히 iMBC.com의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일개 게시판을 방문하여 의견을 피력하거나 소소한 소식들을 전한다는 것은 분명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이렇게 무시 못할 행동력과 영향력을 갖게된 무도갤에서 'You & Me Concert'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스스로 자막제작에 돌입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지 며칠 뒤인 1월 3일, 드디어 "무도갤버전 You & Me Concert"편이 무도갤 내부에서 동영상을 주고 받는 형식으로 공개되었다. 의미심장한 것은 파업사태로 인해 무한도전이 정상적으로 편성되지 못하고 '무한도전 스페셜'이라는 명목으로 재방송이 방영되었던 3일(토요일) 저녁에 "무도갤버전 You & Me Concert(이하 자막버전)"가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무한도전의 제작진의 빈자리를 팬들 스스로가 대신하겠다는 비장한 각오이자 제작진에 대한 응원이 담긴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 가운데 무도갤에서는 급속하게 '자막버전'이 퍼져나갔다.

'자막버전'에 대해서 별것 아닌 자막 몇 줄 추가했을 뿐인 걸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즐겨 보는 팬이라면 무한도전의 자막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자 6명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웃음도 크지만 시청자에게 웃음 포인트를 지적해 주고, 시청자와 출연자를 잇는 대화의 창구가 되기도 하는 자막에서 비롯되는 웃음도 상당하다.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의 자막은 우리나라의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풍자' 코드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정치,경제,문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시청자들로 부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다양하게 세태를 비꼬는 풍자자막을 사용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더욱 큰 웃음을 제공하고 그 이면에서는 한번 더 생각해 볼 만한 논제를 던져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한도전의 자막은 무한도전을 재미있게 만드는 하나의 필수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무한도전과 비슷한 컨셉으로 제작되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자막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막을 통해 색다른 웃음과 감동을 전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결국 무도갤의 '자막버전'은 촬영과 촬영된 필름을 짜집기 하는 편집 등 무한도전 제작진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자막제작에 팬들이 참여함으로써 파업사태로 미완성된 'You & Me Concert'편을 완성하겠다는 무도갤러(실제로는 10명 남짓)들의 열정과 의지가 담긴 산물인 셈이다.

본격적으로 자막버전을 살펴보자. 자막버전을 감상한 후의 느낌은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원래 12월 27일에 방영되었던 원본영상에서 자막이 정말 하나도 없었나 싶을 정도로 '자막버전'의 완성도는 대단했다. 참고로 원본영상은 콘서트에서 출연자들이 부르는 노래의 제목과 가사 이외에는 자막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디씨인사이드 무도갤의 자막제작팀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알림글과 동시에 시작한 자막영상은 'You & Me Concert'편 곳곳에 무한도전 특유의 웃음과 풍자코드를 적절하게 패러디한 자막을 더함으로써 'You & Me Concert' 본방송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위 2장의 동영상 캡쳐사진을 비교해 보자. 상단은 지난해 12월 27일에 방영되었던 'You & Me Concert'편의 원본영상이고, 하단은 무도갤에서 제작한 '자막버전'이다. 원본과 자막버전의 화면 좌상단에 있는 무한도전의 로고가 서로 다르고 자막버전에서 "이보시오! 하얼삔역이 어디오?"라는 자막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막버전 화면에 있는 로고는 무한도전이 에피소드마다 그 주제에 맞는 로고를 변형제작하는 점에서 착안하여 무도갤에서 새롭게 제작한 자막버전 로고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큰 사이즈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위의 캡쳐사진에 삽입된 자막은 모두 원본영상에는 없었던 자막이 추가된 것이다. 자막버전에서는 유재석이 방청객을 상대로 한 "명수형 오래 살게 해 달라고 빌어달라"는 멘트를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고, 엄정화의 'DISCO' 복장을 한 정형돈을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름이 붙여진 '돈기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노홍철과 손담비의 합동공연 장면을 보고 농담 섞인 비난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단순히 말한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그대로의 '자막'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무한도전 자막제작팀이 못 한 것을 우리가 대신하겠다'라는 취지로 진행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MBC 직원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자막내용이나 그래픽 등 여러면에서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것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파업사태로 인해 정상적으로 편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달 27일 방영된 'You & Me Concert'의 미완성된 편집 자체에 대해서 자막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단은 12월 27일 방영된 'You & Me Concert' 본방송의 원본이고, 하단은 '자막버전'이다. 이 장면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빅뱅의 '하루하루'를 패러디하여 공연한 내용이 완전히 편집(삭제)된 상태에서 공연이 끝난 직후, 숨을 고르는 부분이다. 12월 20일 'You & Me Concert 1부'는 빅뱅의 '하루하루'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패러디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모습이 주된 내용이었다. 당연히 27일 콘서트 공연편이 방영될 때에는 무한도전의 '하루하루'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팬들로써는 공연 장면이 완전히 잘려나간 본방송을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자막버전'의 "파업으로 아직 못 본 하루하루"라는 자막은 파업의 여파로 하루하루 공연부분이 편집된 체 방영된 본방송을 지적하고, 후에 감독판으로 다시 재편집되어 방영될 때에 반드시 하루하루 공연부분을 넣어 달라는 팬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장면은 무한도전의 팬이라고 사연을 올린 외국인을 무대 위로 부른 뒤, 좋아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순위를 매겨달라는 부분이다. 순위를 매겨달라고 하자 외국인은 "From Bottom..."이라고 말하며 유재석과 박명수, 노홍철을 먼저 선택한다. 그러나 유재석은 "밑에서부터..."라고 말한 부분을 눈치 채지 못한 상태로 자신들을 1,2,3위로 뽑았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자막버전'에서는 이 부분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자막을 통해 '진실'을 알려주면서 마지막에는 "TEO자막과 함께 사라진 진실"이라는 자막을 통해서 자막이 사라진 무한도전은 이렇게 진실이 왜곡될 수도 있다며 출연자들의 영어실력을 비꼼과 동시에 무한도전 제작진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이 외에 노홍철이 관객들도 함께 참여해달라는 멘트를 하는 장면에서 '소통의 중요성'이라는 자막이 나오기도 하고, 전진이 'Wa'를 부르며 팔을 휘졌는 춤동작을 할 때에는 스타크래프트의 뮤탈 이미지와 함께 '뮤탈을 부르는 몸짓'이라는 자막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장면 장면들을 세심하게 주시하며 풍자를 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웃을 수 있는 부분을 자극하기도 한다.




'자막버전'은 이렇게 무한도전 제작진의 할 일을 대신하다가도,

"p.s 그나저나 2009년 콘서트는 우리도 직접 볼 수 있을까요?"
"부디 빵-터지는 감독판 보여주세요 TEO님! -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자막제작팀이"

와 같은 순수한 팬의 입장으로써 무한도전에 바라는 마음을 자막을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





디씨인사이드 무도갤의 '자막버전 You & Me Concert'는 비록 MBC 노조의 파업사태로 인해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제작-방송되지 않은 연유로 인해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았을 때, 새로운 방송 컨텐츠 제작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방송국의 제작진에 의해서 만들어진 컨텐츠는 일방적인 방향성을 지닌다. 또한 한번 만들어진 컨텐츠는 일회성을 띄며 계속적으로 소모될 뿐, 제작된 컨텐츠 자체가 다시 소스가 되어 재창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이번 '자막버전'은 방송국-프로그램 제작진의 빈자리를 시청자가 거의 완벽하게 대체함으로써 방송국에서 제작한 방송 컨텐츠가 방송국-시청자간에 쌍(양)방향으로 제작될 수 있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의 컨텐츠가 다시 새로운 컨텐츠의 소스가 되어 무한히 증식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컨텐츠 제작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보여진다. 이제까지 우리가 인식해온 UCC가 아마추어적이고 일회성을 띈 소규모 컨텐츠였다면 무한도전 '자막버전 You & Me Concert'는 보다 진화한 형태의 UCC의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방송컨텐츠 제작의 방향이니 뭐니 하며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막버전'은 꽤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긴다. 오락프로그램이 한 주 방송에 차질을 빚었다는 이유로 이를 완성시키고자 팬들이 나섰다는 점은 이슈가 되기에 충분하다. 교양프로그램도 아니고 교육프로그램은 더더욱 아니다. 토요일 저녁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달코자 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시청률에 민감한 오락프로그램일 뿐이다. 게다가 방송이 아예 결방된 것도 아니고 편집을 마무리 짓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뭔가 문제가 있었다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시청자들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방송국이 할 일에 자신들이 손을 대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팬들의 행동력도 눈길을 끈다. 과연 무한도전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런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무한도전 김태호PD의 메일로 자막버전을 보낸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작진 중 누군가 한명이라도 무도갤에 들렀으면 제작진에게 알려지지 않겠냐는 추측도 있었으므로 어떤 루트를 통해서이건 간에 이번에 공개된 자막버전은 무한도전 제작진에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무한도전 제작진에게 '자막버전'이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팬들이 만든 '자막버전'보다 감독판이 더 재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압박으로 다가 올 것이라는 점이다.

구정 연휴에 특집으로 방송된다는 '감독판 You & Me Concert'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일보전진